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란토 공습 (문단 편집) === 타란토 공습 === [[파일:external/www.directart.co.uk/dhm2174.jpg]] 작전 계획에 따라 1940년 11월 11일 밤 9시에 일러스트리어스에서 윌리엄슨(M.W. Williamson) 해군 중령이 이끄는 815비행중대의 소드피시12대가 출격하였다. 6대가 대함공격용 [[어뢰]]를 장착하였고, 나머지 6대는 [[폭탄]]을 장착한 상태였다. 그리고 1시간 30분 뒤에 819비행중대의 소드피시 9대가 2차 공격대로 출격하였다. 4대는 폭탄을, 5대는 어뢰를 탑재한 상태였다. 1차 공격대는 밤10시 58분에 타란토에 도착하였으며, 플레어를 투하하고 유류저장탱크에 급강하폭격을 가하는 것으로 공습을 시작하였다. 곧 윌리엄슨의 편대가 전함 콘테 디 카보우르(Conte di Cavour)에 어뢰를 명중시켜 흘수선 아래 측면에 직경 8.2미터의 구멍을 뚫었다. 윌리엄슨 중령은 즉시 이탈리아측 대공포에 격추당했고 탑승원 2명 모두 포로가 되었다. 뒤이은 편대는 전함 리토리오(Littorio)에 어뢰 2발을 명중시키고, 순양함 2척에 폭탄을 명중시켰다. 이어서 헤일(J.W.Hale) 해군 중령이 이끄는 2차 공격대가 진입하여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어뢰1발이 전함 리토리오에 명중했다. 한 소드피시는 대공포에 2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Vittorio Veneto)에 어뢰를 겨냥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다른 소드피시는 전함 카이오 두일리오(Caio Duilio)에 어뢰를 명중시켜 선체에 큰 구멍을 뚫고 전방 화약고를 침수시켰다. 그러나 베일리(G.W.L.A.Bayly) 해군 대위의 소드피시가 중순양함의 대공포탄에 맞아 격추당하여 탑승원 2명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15분 늦게 도착한 마지막 공격기는 순양함에 급강하 폭격을 감행했으나 실패한 뒤, 새벽 2시39분 일러스트리어스 호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Sturtivant, Ray (1990). British naval aviation: the Fleet Air Arm 1917–1990. London: Arms & Armour Press. pp. 48–50] 이탈리아 군의 입장에서 평가하면, 타란토의 막강한 대공포대는 공습 도중 총 13,489발의 대공포탄을 퍼부었고, 여기에 함선들도 수천 발의 대공포탄을 추가하여 막강한 탄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방공기구 87대 중 60대는 전날 불어닥친 강풍으로 날아가버린 상태였으며, 어뢰 방지용 그물을 12.8km에 걸쳐 설치해야 완전한 방호가 가능하지만, 4.2km만 설치하는 등 [[어뢰]]에 대한 방호책에서 헛점이 존재했다. 또한 일러스트리어스 함장 데니스 보이드(Denis Boyd)는 "2회에 걸친 공습 중 적군이 서치라이트를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라는 보고를 올렸다. 이탈리아가 서치라이트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서치라이트를 쓰면 자신들의 위치가 더 쉽게 발각될 수 있다는 단점때문에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등화관제]]가 왜 있는지 생각해보면 꽤나 그럴싸한 이유. 하지만 문제는 영국은 항구안에 있는 배를 공격하러 온 것이라 찾는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